한마루 에피소드

역전재판 한글화

한마루_ 2011. 3. 18. 19:29

 

역전재판 (逆転裁判, Gyakuten Saiban)

플랫폼 : 게임보이 어드밴스
장 르 : 법정 어드벤처
제작사 : 주식회사 캡콤 

발매일 : 2001년
공개일 : 2003년


사실 한마루가 있기에는 이보다 앞서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 와 '젤다의 전설 - 무쥬라의 가면'이 있다. 하지만 한마루라는 이름을 쓰게 된 계기는 이녀석이기 때문에….

벌써 7년 전의 이야기다. 사실, 역전재판이라는 게임을 접하게 된 계기는 참 단순했다. 한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게임 불감증'에 걸려있던 때라 이 게임 저 게임 기웃거리기에 바빴고 한참 대학생활을 즐기느라 게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당시에는 엄청난 아이템을 손에 넣었는데 바로 '에뮬레이터(Emulator)'라는 물건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무언가를 모방하여 작동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일컫지만 이 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콘솔 게임기를 컴퓨터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모든 프로그램을 에뮬레이터로 묶어 부를 때였다.

 

* 왼쪽부터 GBA 에뮬레이터 VBA, N64 에뮬레이터 Project64, PS2 에뮬레이터 PCSX2

기억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때는 에뮬레이터와 롬파일들을 CD4장과 함께 책으로 만들어 팔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28.8kbps 짜리 모뎀을 이용해 받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불법이라는 걸 고등학교 들어서야 알았다.

아무튼, 그러다가 발견하게 된 녀석이 바로 '역전재판' 이었다. 분명 개발사는 캡콤인데 머리 스타일은 카즈야 같이 생긴 녀석이 나와서 삿대질을 해댄다. 배경은 법정인데 마치 격투게임같은 컷신이 나오며 상대방의 모순을 밝혀낸다. 지금이야 다소 유치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 바로 일본어라는 것. 왜 이 재미있는 게임들을 일본인들만 즐기는 건지 혹은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무쥬라의 가면 이후 객원 번역만 하다가 스스로 팀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팀의 이름은 '역전재판 한글화팀' 이었다….

여기에는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리팀의 경민이라는 친구(NK君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있는데 사실 이 경민이가 그 경민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프로그래머를 구하기 위해 어찌어찌하다 박경민이라는 사람과 연결이 되어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과연, 내가 물어보는 것마다 명쾌한 대답이 나오고 두시간 만에 의기투합하여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패치를 낼 즈음 패치 스탭 목록을 작성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박경민'이 아닌 '김경민'이라는 것을. 즉, 나는 다른 사람한테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해서 패치팀에 합류하도록 했고, 이 친구도 별 다른 말 없이 패치팀에 합류한 것이다. 정말 많이 놀랬다; 박경민은 어디있냐고? …나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팀의 이름을 만들자는 세호형(umenokoji)경민이, 그리고 준하(밀피)의 의견에 '한'글화의 '마루'가 되자는 뜻으로 '한마루'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마루는 순수 우리말로 꼭대기를 일컫는다. 처음에는 나름 유니크하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한마루라는 이름은 꽤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알게 되었다.

그 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신나게 한마루팀은 성장해갔고 첫번째 결과가 나타났다. 바로 이녀석이다.

 


내가 맡았던 분야는 당시 일본어 수준은 보통이었기 때문에 문장의 최종 검수와 타이틀 그리고 그래픽의 한글화를 맡았었다. 번역은 대부분 밀피와 뒤늦게 합류한 로랑이 최선을 다해줬다.

전체적인 구성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미리 범인에 대한 복선을 주고 유저가 단서를 조합하여 모순을 밝히는 유저 편의가 중시된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할까. 기존 미스트나 D의 식탁 시리즈가 아무런 단서 없이 말 그대로 어드벤처 였다면 유저 편의가 얼마나 게임성을 좌지우지하는지 알 수 있는 게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피고인이 궁지에 몰리면 본색을 드러내는 점. 얌전하고 순진해보이던 피고인의 모순을 짚어내면 험악하게 변하는 피고인들. 어찌보면 현실반영도 잘 된 것 같다;

이 게임은 정말 대박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이 게임이 한글화 되었을 때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았다면 누구나 동감하였으리라 본다. 당시 홈페이지의 트래픽이 1기가 였는데, 200kb 남짓 되는 파일을 받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 트래픽 초기화가 된 후에도 2시간이면 트래픽이 초과되어 22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나중에는 게시판과 자료실 페이지를 나눠서 자료실에 못들어가면 게시판이 채팅방으로 변했던 기억도 난다.

결국, 이 역전재판 한글화 패치가 앞으로 우리 팀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커다란 반석이 되기도 하였다. 이 때의 추억을 생각하면 정말 정말 더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역전재판2 한글화 패치에 대한 내용을 쓸 때 적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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